군대 불쌍한 후임썰 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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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군대 있을 때 후임으로 들어온 친구 하나가 있었음. 나랑 1년 정도 차이나는 후임이었는데, 키 188에 몸무게 110kg 되는 완전 거구였음. 근데 단순히 덩치만 큰 게 아니라, 집안도 엄청난 금수저. 자대 배치 때부터 연대장이 직접 와서 박격포 사수 보직을 본부소대로 빼줄 정도로 인맥이 탄탄했지. 누구나 한번쯤 "저런 인맥이면 군생활도 편하겠구나" 하고 부러워할만한 그런 친구였음.
뭐, 나랑 같이 있던 기간은 짧았지만, 그 친구 나름 소대생활도 잘하고 문제없었음. 그러다 내가 전역하고 나서 얼마 안 있다가 그 후임이 상병 진급 무렵에 사고가 났다는 소식을 들었음.
그때 부모님이랑 외삼촌이 면회 왔다가 외박 가려고 차량 이동 중에 군용 육공(6x6 군용차량)하고 추돌하는 큰 사고가 난 거임. 탑승자는 총 5명이었는데, 다른 사람들은 다 멀쩡한데 그 친구만 척추 손상으로 하반신 마비 판정을 받았다고 하더라. 진짜 듣는 순간 "와, 세상은 왜 이렇게 불공평하냐" 싶었음.
그리고 나서 한 7년쯤 지나서, 내가 직장 근처에 오피스텔 살 때의 일임. 그날 엘리베이터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휠체어에 앉은 젊은 거구가 있는 거야. 처음엔 그냥 지나쳤는데, 왠지 낯이 익더라고. 자세히 보니까, 살이 엄청 빠진 그 친구였음. 그때 바로 알겠더라. 사고로 하반신 마비된 그 후임. 진짜 반가워서 "야, 너 맞지?" 하고 인사를 했는데, 얘가 눈빛이 너무 생기 없고 말수가 적었음.
대화 몇 마디 주고받았지만, 뭔가 더 말하고 싶어도 애써 피하는 게 보이더라. 그래서 더 얘기하기는 좀 그랬음. 그래도 다행인 건, 부자 집안 덕에 돈 걱정은 없는 듯했음. 그 오피스텔도 본인 소유라니까.
그날 그렇게 만난 게 묘하게 씁쓸했음. 그때의 그 거구였던 후임이 이렇게 변했다는 게 믿기지 않았거든.
근데 반전이 있음. 그 후로 몇 주 뒤, 동네에서 또 마주쳤는데, 이번엔 혼자가 아니었음. 여자친구랑 같이 있더라고! 그때 딱 알았지. 얘가 그때 나랑 이야기할 때 피했던 게 자기 사정에 대해 동정받기 싫어서였다는 걸. 오히려 자신을 믿어주고 같이 걸어가는 사람이 옆에 있었던 거지. 그날 이후, 그 씁쓸함 대신 조금 뿌듯해졌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