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센치해져서 쓰는 초딩시절 .ss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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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친구가 옛날 얘기를 하던 게 생각나서 그 이야기를 대신 써본다. 이 친구는 초등학교 때 부산에서도 약간 외진 동네에서 살았다고 한다. 지금은 다 개발되어서 신도시가 된 곳인데, 그 시절엔 논밭이 펼쳐져 있는 시골 같았다고 한다. 그 동네엔 일제시대 때 만들어진 방공호 같은 동굴도 있었고, 큰 무덤처럼 보이는 고분도 있었다고 한다. 동네 분위기도 꽤 특이했는데, 학교 다니던 여학생이 납치당한 적도 있었고, 호수에서 여자 시체가 떠올랐다는 소문도 돌았다고 했다. 더 무서운 건 초등학교 앞 개천에서 시체가 떠내려온 적도 있었다는 거다. 지금 생각해보면 꽤 무시무시한 곳이었지만, 그때는 그저 그러려니 했던 것 같다고 하더라.
그렇게 지내던 중에, 부모님께서 더 이상 그 동네에서 살 수 없겠다고 생각하셨는지 아버지 직장도 서울에 있던 터라 서울로 이사 갈 준비를 하셨다고 한다. 졸업을 앞두고 그런 소식을 듣게 된 거였지. 어느 날, 그 친구는 더운 날씨에 은행에 가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친구 한 명이 자기 아버지 손을 잡고 은행에 들어오는 걸 봤다고 한다. 방학이었나 봐, 오랜만에 얼굴을 보니 반가워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는데, 자연스럽게 "너 이번에 어디 중학교로 가냐?"는 얘기가 나왔다.
그런데 친구는 뭔가 말하기를 망설였고, 그 순간 친구 아버지가 끼어들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우리 집은 이번에 해운대로 이사 간다. 부럽지 않냐?"라고, 약간 자랑하는 투로 말이다. 그때 해운대는 부산에서도 잘 나가는 동네로 유명했으니까, 그럴만도 했다고. 해운대에는 고층 아파트도 많고, 백화점 같은 상업 시설도 가득했던 곳이라, 누가 봐도 발전한 동네로 느껴졌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그 친구도 어린 마음에 가만히 있을 수 없었는지, 뭔가 반격(?)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나 보다. 그래서 이렇게 말했단다. "그래요? 우리 집은 이번에 서울로 이사 가요." 그때는 서울이라는 말 자체가 어마어마한 의미로 다가오던 시절이라, 친구 아버지가 그 말을 듣고 갑자기 조용해졌다고 했다. 한껏 자랑하려던 그 아저씨의 표정이 순간 얼어붙은 걸 보면서, 참 묘한 기분이 들었다고 하더라.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는 해운대도 꽤 잘 나가는 동네였고, 서울이랑 비교해도 나쁘지 않았을 거라고 했지만, 그래도 서울이라는 상징성은 그때나 지금이나 컸던 것 같다. 그런데 왜 친구 아버지는 그렇게 자랑을 하려 했던 걸까? 그걸 궁금해하며 이 이야기를 떠올렸다는 그 친구는, 지금에 와서 보면 서울로 이사 온 후에 느낀 게, 지방과 수도권의 인프라 차이는 정말 넘사벽이었다는 거다. 서울 변두리만 가도 지방의 번화한 곳보다 훨씬 좋았으니, 그 당시의 자랑도 지금 돌이켜보면 별게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된 거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더 수도권과 지방의 차이가 벌어지는 걸 보면 안타깝기도 하고, 한편으론 그 시절이 참 그리운 것 같다는 말로 그 친구는 이야기를 마무리했다.